1. 설탕보다 300배 단맛, 사카린은 어디서 왔을까
사카린이라는 이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칼로리는 없지만 단맛은 설탕보다 300배 이상 강하다는 이 물질은, 사실 인공 감미료 중에서도 가장 먼저 발견된 물질입니다.
사카린은 혀에 있는 단맛 수용체와 결합해 뇌가 단맛으로 인식하게 만들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하거나 당뇨로 인해 설탕을 피해야 하는 사람들이 주로 사용해왔습니다. 이름은 ‘달콤함’을 뜻하는 그리스어 *사카론(sakcharon)*에서 왔고, 처음 발견된 이후 다양한 식품에 널리 사용되고 있죠.
하지만, 단맛 외에도 사카린이 숨기고 있던 놀라운 능력이 최근 과학자들에 의해 밝혀지고 있습니다.
2. 과거의 유해성 논란, 진실은 달랐다
사카린을 이야기할 때 과거의 유해성 논란을 빼놓을 수 없습니다.
1970년대, 쥐 실험을 통해 사카린이 방광암을 유발할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오면서 사회적으로 큰 파장이 일었습니다. 실제로 사카린을 피하라는 경고도 많았고, 식품에서 사용이 제한된 나라들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밝혀진 사실은 조금 달랐습니다.
해당 연구는 쥐에게 사람보다 훨씬 많은 양의 사카린을 강제로 투여한 실험이었고, 결과적으로 인간에게 그대로 적용하기엔 무리가 있었습니다.
이후 세계보건기구(WHO)와 미국 환경보호청(EPA)는 사카린을 ‘발암 가능 물질 목록’에서 완전히 제외했습니다. 지금은 식품첨가물로서 안전성이 인정되어 여러 나라에서 다시 널리 사용되고 있습니다.
3. 설탕 대신이 아닌 ‘항균 무기’로 주목받는 사카린
최근에는 사카린이 단순히 단맛을 내는 물질 그 이상일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바로 ‘슈퍼 박테리아’를 억제하는 강력한 항균 작용 때문입니다.
특히 항생제가 듣지 않는 ‘다제내성균’에 사카린이 어떤 방식으로 작용하는지에 대한 연구 결과가 전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습니다.
실험에서 사카린은 세균의 세포막을 손상시키고, DNA 복제 과정을 방해하여 세균의 정상적인 증식을 막았습니다.
세균이 보호막처럼 형성하는 ‘바이오필름’ 역시 사카린에 의해 억제되거나 파괴된다는 점은 더욱 인상적입니다.
바이오필름은 세균이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 만드는 구조물로, 항생제가 잘 침투하지 못하도록 막는 일종의 방패 같은 역할을 합니다. 그런데 이 강력한 보호막조차 사카린 앞에서는 힘을 못 썼다는 겁니다.
4. 내성균의 성장을 막는 실제 실험 결과
사카린의 항균 효과는 실험에서도 뚜렷하게 나타났습니다.
예를 들어, 대장균에 2% 농도의 사카린을 처리하자 세포막이 가늘어지고 ‘고스트 셀’이라는 변형된 세포 형태로 변화했습니다.
녹농균과 같은 고위험 내성균에게 사카린을 6% 농도로 처리했을 때, 세균 성장이 70% 이상 억제됐습니다.
특히 놀라운 점은 ‘바이오필름 억제 효과’였습니다. 일부 내성 세균에서는 91% 이상의 바이오필름 억제율을 보여 항생제의 역할을 대신하거나 보조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줬습니다.
기존 항생제가 듣지 않던 균에 사카린을 함께 사용하면, 항생제의 효과가 다시 살아날 수도 있다는 가설은 매우 흥미롭고 중요합니다.
5. 항생제와 함께 쓰면 시너지 효과도
사카린은 단독으로도 항균 효과가 있지만, 항생제와 함께 사용할 때 더 큰 시너지를 낼 수 있습니다.
대표적인 예로, 병원성 다제내성균 아시네토박터 AB 507에 사카린을 투여하자, 기존 항생제가 세균 내부로 더 많이 침투하는 것이 확인되었습니다.
이 현상은 곧 ‘항생제에 대한 저항성이 무너진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해, 사카린이 세균의 방어력을 약하게 만들어 항생제가 다시 효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죠.
이러한 특성은 특히 오래된 항생제인 페니실린 등 베타락탐 계열 항생제가 다시 주목받게 하는 계기가 될 수 있습니다.
값비싼 신약 없이도 사카린의 도움으로 기존 약물의 효과를 되살릴 수 있다면, 의료비 부담을 줄이고 치료 접근성도 높일 수 있습니다.
6. 단맛의 과학이 생명을 살릴 수도 있다
사카린은 오랫동안 설탕 대신 사용하는 단맛의 도구로만 여겨져 왔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생명을 위협하는 슈퍼 박테리아와의 싸움에서 새로운 무기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고 있습니다.
항암 작용, 항균 효과, 내성 세균 억제, 바이오필름 파괴 등 지금까지 우리가 몰랐던 사카린의 숨겨진 능력은 분명 더 깊이 연구될 가치가 있습니다.
물론 앞으로도 많은 실험과 임상이 필요하겠지만, 사카린이 ‘건강에 나쁜 물질’이라는 오해를 넘어, 오히려 ‘건강을 지킬 수 있는 물질’로 재조명되고 있는 현재의 흐름은 무척 흥미롭습니다.
마무리하며
우리가 일상적으로 사용하는 식품 속 물질이, 때로는 상상하지 못한 영역에서 인류 건강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습니다.
사카린 역시 단맛을 넘어서, 항생제의 한계를 보완하고 새로운 치료법으로 활용될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합니다.
아직은 실험실 수준의 이야기일지 모르지만, 언젠가 ‘사카린 기반 항균제’가 병원에서 사용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사소해 보이는 것에서 큰 변화가 시작된다는 점, 사카린은 그 좋은 예가 될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