퇴근하고 돌아와 문을 열면
남편은 늘 소파에 앉아 저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말은 안 해도, 저녁이 되면 알죠.
“오늘도 한 잔 할까?”
가볍게 맥주 한 캔.
가끔은 소주 반 병.
안주로는 감자칩, 족발, 치즈, 닭발…
그 시간이 참 좋았습니다.
하루 중 우리가 제일 많이 웃고,
제일 솔직해지는 순간이었으니까요.
그런데 그 한 잔이, 그 웃음이
남편 건강을 무너뜨릴 줄은 정말 몰랐습니다.
건강검진, 평소처럼 가볍게 갔지만…
남편은 다리를 다쳐 장애등급을 받은 이후,
운동하는 게 쉽지 않은 상태입니다.
그래서 체중이나 건강이 늘 걱정이었지만,
괜찮겠지 싶었고, 먹는 걸로 스트레스 푸는 게 가장 편한 위로였습니다.
하지만 얼마 전 건강검진 결과에서
‘지방간’이라는 진단을 받게 됐습니다.
“간 수치가 꽤 올라가 있습니다. 지방간 초기로 보입니다.”
결과지를 보며 의사 선생님이 조심스럽게 말씀하시더군요.
순간 머리가 멍해졌습니다.
왜? 남편은 억지로 마셔도 겨우 한두 잔인데.
곧바로 떠오른 건, 그 술을 권했던 사람, 바로 저였습니다.
‘한 잔’이라는 습관, 너무 가볍게 봤습니다
돌이켜보면, 거의 매일이었습니다.
제가 먼저 “여보, 맥주 한 잔만 하자” 하며
작은 기분전환처럼 권했던 술.
그게 일상이 되었고,
남편은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 시간은 부부가 서로를 다독이는 유일한 여유였지만
결국 그 시간들이 남편 간에는 조용히
지방으로, 염증으로, 숫자로 쌓이고 있었던 겁니다.
지방간, 남의 얘기인 줄 알았습니다
‘간이 안 좋다’ 하면
술 많이 마시는 사람, 혹은 연세 있는 분들 이야기 같았어요.
하지만 요즘 지방간은
비만, 탄수화물 과다 섭취, 운동 부족 등
생활습관에 더 큰 영향을 받는다고 하더군요.
특히 운동이 어려운 사람일수록
음식과 음료의 선택이 간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줍니다.
남편이 겪었던 작은 이상 신호들
- 이유 없이 피곤하다며 자주 누움
- 소화가 잘 안 되고 트림이 많아짐
- 배가 유독 앞쪽으로 나옴
- 오른쪽 옆구리나 갈비뼈 아래쪽이 묵직하다고 함
그땐 단순한 피로나 체중 문제인 줄 알았지만,
사실 그게 몸이 보내는 경고였습니다.
우리는 이렇게 바꿔보기로 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처음엔 막막했습니다.
술을 줄이는 것도, 운동을 시작하는 것도
모두 남편에게 쉽지 않은 일이었거든요.
그래서 ‘할 수 있는 만큼’만 하기로 했습니다.
- 함께 술 끊기
제가 먼저 제안했습니다.
무알콜 맥주를 사두고, 안주는 가볍게 바꿨습니다. - 실내 스트레칭과 자세 운동
무리한 운동 대신, 유튜브 보며 앉아서 할 수 있는 스트레칭을 따라 했습니다.
매일 15~20분만 해도 땀이 납니다. - 저녁 식사 바꾸기
귀리+파로밥, 톳+두부, 나물, 달걀, 고등어구이 같은 심플한 식사.
배달 음식은 주 1회로 줄였습니다. - 간에 좋은 음식들 챙기기
브로콜리, 양파, 마늘, 올리브유, 녹황색 채소들로 반찬을 채웠습니다.
그리고 3개월 뒤
재검진 결과, 남편의 간 수치가 눈에 띄게 좋아졌습니다.
체중도 조금 줄었고, 피곤함도 덜하다고 하더군요.
집에 돌아오는 길에
남편이 조용히 말했습니다.
“나, 고맙더라. 솔직히 무서웠거든.”
그 말에 마음이 찡했습니다.
제가 무심코 권했던 ‘한 잔’이
그에게 얼마나 부담이었을까 싶기도 했고,
이제라도 알아서 정말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글을 읽는 당신께
혹시 지금,
하루의 끝을 술 한 잔으로 마무리하고 있나요?
가족과 나누는 그 시간이 소중하다는 거 저도 압니다.
하지만 때로는, 그 소중함이 건강을 해치는 무기가 될 수도 있다는 걸..
이번 일을 겪으며 절실히 느꼈습니다.
건강을 바꾸는 건..
거창한 운동이나 극단적인 식단이 아니라,
그저 ‘이대로 괜찮을까’ 하고 돌아보는 하루의 시선에서 시작된다는 걸..
저희 부부는 몸으로 배우는 중입니다!!